정치관련

연성 권위주의 체제에서 언론 자유의 변증법적 진화

조제복 2025. 5. 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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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허락된 권위’ 속 언론은 어떻게 진화하는가?

오늘날 세계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 권위주의, 즉 연성 권위주의(Soft Authoritarianism) 체제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체제는 전통적인 군사 독재나 일당 독재와 달리, 형식적 민주주의 제도를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권위주의 통제를 유지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체제에서 언론 자유가 어떻게 억압되면서도 동시에 진화하는가, 그 변증법적 과정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연성 권위주의란 무엇인가?

연성 권위주의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집니다.

  • 선거는 존재하지만 공정하지 않음
  • 정당 정치가 허용되지만 실질적 경쟁은 제한됨
  • 언론은 존재하지만 자유롭게 기능하지 않음
  • 사법·입법부는 제도화되었으나, 집행권력에 종속됨
  • 시민사회의 일부는 보장되지만, 정부의 영향력을 받음

대표적인 사례로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러시아, 헝가리, 터키, 그리고 일부 시기 한국과 태국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소 기준을 충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정교하게 통제하는 혼합형 정치 체제입니다.


언론 자유의 역설: 억압과 공존의 이중성

연성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완전한 언론 통제도 없고, 완전한 자유 보장도 없습니다. 오히려 언론은 일정 정도 ‘활동 공간’을 가지되,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통제됩니다:

통제 방식 설명 예시

법률과 제도 모호한 표현의 언론법, 명예훼손법 등으로 위협 '가짜뉴스 방지법', '국가안보 위반' 조항
사적 경제 수단 광고주의 통제, 미디어 소유 집중을 통한 간접 통제 재벌 그룹의 언론사 인수, 정부 광고 차등 지원
행정 압력 세무조사, 사법 고발 등으로 위축 유도 비판적 언론에 대한 감사원·검찰 압박
자기검열 유도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도록 내부 규범 강화 편집권 축소, 기자에 대한 징계 관행

이처럼 언론은 억압되면서도 제거되지 않습니다. 이는 연성 권위주의 체제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변증법적 진화의 3단계

언론 자유의 변화는 단순한 억압의 연속이 아니라, 통제와 저항의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합니다. 이를 **변증법(dialectics)**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습니다.

1단계: 통제의 정당화 (명분의 확보)

  • 연성 권위주의는 항상 ‘정당성’을 추구합니다.
  • 언론에 대한 통제도 ‘사회적 책임’, ‘국가 안보’, ‘공공의 질서’를 근거로 정당화됩니다.
  • “가짜 뉴스 퇴치”, “분열 조장 방지”, “건전한 정보 생태계 조성” 등은 그 수사적 표현입니다.

→ 이 단계에서 언론의 활동 영역은 명백히 축소되지만, 언론이 ‘해체’되지는 않습니다.

2단계: 시민·언론의 반응 (저항과 우회)

  • 억압이 강화되면 대안 언론, SNS, 개인 유튜브, 팟캐스트 등 다양한 ‘우회 채널’이 등장합니다.
  • 기존 언론사 내에서도 탐사보도팀이나 사설칼럼진을 중심으로 제한적 반격이 시도됩니다.
  • 비판적 언론 소비자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시민사회의 언론 감시 운동이 강화됩니다.

→ 통제가 강해질수록 저항의 기술도 진화합니다. 이는 언론의 질적 전환을 유도하게 됩니다.

3단계: 제한적 자유의 재협상 (공존의 모색)

  • 정부는 지나친 통제가 초래할 수 있는 국제 비난, 경제적 피해, 정당성 훼손 등을 인식하고 일부 후퇴합니다.
  • 이로 인해 언론과 정부 간에는 일정 수준의 관성적 타협선이 형성됩니다.
  • 이 과정에서 특정 이슈에 대한 언론의 자유는 확대되고, 금기 영역은 여전히 봉인되는 양극화가 발생합니다.

→ 언론 자유는 전체적으로 후퇴했지만, 부분적으로 정교하고 날카로운 영역으로 진화합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상반된 진화 경로

두 나라 모두 연성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언론 자유의 진화 경로는 달랐습니다.

국가 언론 통제 방식 언론 자유 진화

싱가포르 국가 기관과 법률로 철저 통제, 여론 형성의 90% 이상 정부 주도 대안 언론 제한, SNS까지 통제 확장, 비판 여론 무력화 지속
말레이시아 부분 통제와 자유 병존, 2008년 이후 정치 경쟁 격화 온라인 미디어 성장, 정부 비판 보도 증가, 언론 자유 개선 시도

→ 이는 정치 경쟁 수준, 시민사회 역량, 외부 압력(국제 여론) 등이 언론 자유의 진화 양상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과거 사례: ‘문민정부’와 ‘촛불 이후’의 연성 권위주의 논쟁

한국은 1990년대 이후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했지만, 특정 시기마다 연성 권위주의적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 문민정부~MB정부 시기: 언론사 낙하산 인사, 국정원·검찰의 보도 개입 의혹 등
  •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태, 종편 장악 논란 등
  • 촛불 이후: 정권 성향과 다른 언론에 대한 소셜 여론 공격, 방송통신 심의 확대 우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한국 언론은 유튜브·팟캐스트를 통한 분화, 탐사보도의 부활, 공영언론 개혁 논쟁 등을 통해 다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결론: 억압과 저항의 변증법 속에서 진화하는 언론

연성 권위주의 체제는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 중간 지대의 권력게임입니다. 이 안에서 언론은 억압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억압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진화합니다. 그 진화는 단순한 ‘자유의 확장’이 아니라, 정치 권력과 언론이 서로를 통제하고 학습하며 만들어가는 동태적 구조입니다.

따라서 언론 자유는 하나의 상태(state)가 아니라, 끊임없는 협상과 재조정 속에서의 **과정(process)**입니다. 이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단지 언론의 문제를 넘어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 역량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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