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고용이란 환상인가? 실업률 3% 시대의 경제학적 물음”
자연실업률 가설(Natural Rate Hypothesis)은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는 경제가 장기적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하면 실업률은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에 수렴하며,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으로 이 수준 이하로 실업률을 영구적으로 낮출 수 없다는 이론입니다. 이 가설은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펠프스(Edmund Phelps)가 1960~70년대에 정립한 이후, 거시경제정책의 중심 패러다임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국, 한국, 유럽 등 여러 선진국이 자연실업률 추정치보다 낮은 실업률을 지속하면서도 물가 상승이 거의 없는 “고용과 저물가의 공존”이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자연실업률 개념의 한계, 재정의의 필요성, 그리고 정책적 함의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자연실업률 가설의 전통적 정의를 짚고, 최근의 고용 시장 변화를 반영한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자연실업률 가설이란?
자연실업률(NRU)은 다음과 같은 정의를 가집니다:
여기서
- $u^*$: 자연실업률
- $u_s$: 구조적 실업률
- $u_f$: 마찰적 실업률
즉, 경기가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항상 존재하는 실업률이며, 노동 시장의 정보 불완전성, 직업 탐색 시간, 기술 변화 등에서 발생합니다. 이론에 따르면, 실업률을 $u^*$보다 낮추려는 시도는 결국 기대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물가만 상승하고 실업은 원래 수준으로 회귀합니다.
프리드먼은 이를 “통화정책은 장기적으로 실업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해석했습니다. 이는 필립스 곡선이 장기적으로 수직이라는 주장과 연결됩니다.
자연실업률 가설에 대한 도전
1. 기대 인플레이션이 물가를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실업률 가설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을 주도한다고 봤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지 않음에도 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특히 2021년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공급망 붕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비수요적 요인이 주도했습니다.
이는 “기대-인플레이션에 의한 필립스 곡선” 자체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낳습니다.
2. 고용과 인플레이션의 관계 약화
2000년대 이후 미국, 독일, 한국 등에서 실업률이 3~4% 수준으로 하락했음에도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었습니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임금 압력이 커지고 물가가 올라야 했지만, 디지털화, 플랫폼 노동, 글로벌 공급체계 등으로 임금 전가력이 약화되어 이런 연계가 약화되었단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3. 구조적 실업률의 동적 변화
자연실업률은 이론상 고정된 개념처럼 보이나, 현실에서는 노동시장 제도, 기술 발전, 교육 수준, 인구 구조에 따라 끊임없이 변합니다. 예컨대 자동화 기술이 진전되면서 특정 직무의 수요는 사라지고, 새로운 직종의 탐색 기간은 길어집니다. 이로 인해 자연실업률 자체가 과거보다 변동성이 큰 동태적 개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현대적 재해석의 방향
1. 동태적 자연실업률 개념
최근 거시경제학자들은 자연실업률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변수로 봅니다. 이를 **Non-Accelerating Inflation Rate of Unemployment (NAIRU)**라고 부르며, 다음처럼 표현합니다:
여기서
- $\pi_t$: 현재 인플레이션
- $u_t$: 실제 실업률
- $u^*_t$: 시점 t의 자연실업률
- $\alpha$: 민감도 계수
$u^*_t$는 경제 구조, 제도, 노동시장 참여율, 고용의 질 등 복합 요인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합니다.
2. 자연실업률 대신 ‘균형 실업률’로의 용어 전환
정책 실무자들은 **고정된 자연실업률 개념보다, ‘균형 실업률’(equilibrium unemployment rate)**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이 개념은 “현재 구조에서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실업률”로, 노동 수요와 공급이 제도적으로 타협을 이루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이론보다는 경험적 수치를 반영한 개념으로, 자연실업률에 대한 이념적 고착에서 벗어난 정책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3. 플랫폼 경제와 노동시장 유연성의 반영
긱 이코노미와 플랫폼 노동 확산은 전통적인 고용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풀타임 근로자 중심의 고용 통계는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실업률의 추정 자체를 불확실하게 만들며, ‘실업’의 정의조차 재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정책적 시사점
1. 금리 정책의 유연성 필요
자연실업률 개념에 얽매여 기준금리를 조정하면, 잘못된 타이밍의 긴축 혹은 완화 정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현대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관계를 보다 정성적이고 다변수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자연실업률 자체보다는 시장 분위기와 선행지표에 기반한 판단을 중시합니다.
2. 완전고용의 재정의
완전고용은 더 이상 고정된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 참여율, 고용의 질, 자발적 비경제활동 인구의 변화까지 반영하여 고용의 질적 수준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3. 고용정책과 구조조정의 병행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단기 정책보다 장기적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 핵심입니다. 예:
- 직업 재교육, 평생교육 강화
- 노동 이동성 촉진 정책
- 여성, 고령자, 청년층의 참여율 확대 정책
결론: 자연실업률은 고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자연실업률 가설은 거시경제학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지만, 현실 경제는 이론보다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 노동시장 구조, 글로벌화, 플랫폼 경제 등은 실업률의 ‘자연스러운 수준’ 자체를 끊임없이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정책당국자와 연구자는 자연실업률을 정적인 수치가 아닌 동적인 과정으로 바라보며, 지속적으로 검토하고 조정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이론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해석을 더하는 진화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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